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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박자만화공방_후일담

고양이 아홉 마리 강아지 두 마리

 

 

친구의 집에 며칠 다녀왔다. 몇 년 만의 만남이라 과음이 있을 거라 기대했는데 과음 따위는 없었다. 시골사람이 되어버린 친구는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났다. 나도 같이 일찍 자고 - 나만 늦게 일어났다. 매우매우 깊은 잠을 잤다. 깨어날 때마다  팔다리를 쭉 쭉 뻣어 몸을 비틀며 기지개를 켜면 그렇게 시원할 수가 없었다.  옆을 돌아보면 늘 친구는 없었다.

서울생활에 진절머리가 난 친구는 몇년전에 고향으로 돌아갔다. 여자 혼자 시골 살면 무섭지 않을까 했지만 고양이랑 개랑 같이 있대서 조금 덜 걱정했다. 근데 막상 와서 보니 솔직히 더 걱정스럽다 

원래는 친구혼자 살고 있었는데 - 굶주린 채 골골 거리며 따라온 길냥이를 내치지 못해서 - 다쳐서 빌빌 거리는 강아지를 내치지 못해서 -고양이 한 마리가 두 마리가 되고 강아지 한 마리가 두 마리가 되고 -그래서 지금은 고양이 아홉 마리에 개 두 마리가 되었다. 개와 고양이의 숫자는 가끔 바뀐다. 안 키우려고 아무리 노력해도 이놈들 사이에 내 친구가 허당이라고 소문이 났는지 자꾸 늘어나고 있다. 친구가 박물관 해설사 일을 하면서 번 돈들은 이 녀석들 사료값, 중성화 비용, 병원비용 무슨무슨 예방주사 - 뭐 그런 걸로 사라지고 있었다. 도대체 이게 뭔 변고인 걸까-

근데 친구는 나처럼 변고로 받아들이지 않는 것일까? 평화로워 보인다. 심지어 행복해 보이기도 하다. 친구는 나보다 일찍  일어나서  밭에 가서 일을 하고 마당에 뭔가를 심고 모종을 돌보고  개 고양이랑 마당에서 어쩌고 저쩌고 대화(?)하는 소리가 들린다.  그 놈들에게 밥을 챙겨주며 - 어쿠 배고팝써요- 이럼서 별의별 아양을 다 떤다. 사람한테 그렇게 좀 해봐라 친구야 

몇 년 전 왔을 때 아무것도 없던 마당에는 이제 여러 종류의 꽃들이 피어있고 나무가 심어져 있다. 봄이라서 이만저만 아름다운 게 아니다  이제 마당이 아니라 정원이라고 불러야 할 듯하다 - 집 주변은 큰나무와 작은 나무들이 둘러싸고 있었고 수레국화가 가득했다. 양귀비도 올라오고 있었다. 집도 아름다워지고 마당도 아름다워졌는데 친구는 피부가 빨갛게 타서 완전 시골사람이 다 되었다.

늦잠을 자고 일어나 주방으로 물을 마시러 가면 열어논 주방 문밖이 아름다웠다. 친구는 맨날 이걸 보겠구나 - 친구가 이 풍경을 만들었구나. 햇빛 가득한 마당에 생명이 가득하다. 개들이 땅을 파는 소리,  고양이가 처마로 뛰어오르며 내는 발돋움 소리, 나뭇가지를 희롱하며 헛손질을 하는 소리  -옥수수가 하나 걸려있는 처마 끝에 갈대발이 비스듬하게 걸려있다- 마을은 조용하다

 

서울에 돌아가면 이 풍경이 그립겠구나 보고 싶겠구나 - 그래서 그렸다  고양이가 풍경속으로 들어오길래 고양이도 그렸다. 

 

 

이 날 친구의 고양이중 하나가 새끼를 5마리나 낳았다. 이제 친구는 개 두 마리 고양이 열네마리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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