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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박자만화공방_후일담

성배에게

성배에게

니가 나에게 온 것은 몇년전이었다.
넌 태어난지 얼마 안되는 새끼고양이였다.
지방에 살던 친구는 버려진 너를 주은 뒤 주인을 만들어주기 위해
내 작업실이 있는곳까지 먼길을 고속버스를 타고 왔다.

가방속에  실려 온  너는
낯선 내 작업실에 도착하여 가방 밖으로 나왔고  
친구가 가버리자 버려지는줄 알고 닫힌 문을 바둥거리며 긁어댔다.

넌 새로운  주인인 나를 경계했다.
하지만 밥 먹을 시간엔 친한척을 하며 새끼고양이 특유의 애교를 부렸다.
천성이 밝고 명랑한 아이였다.

그런 니가 나도 좋았다.
넌 작고 귀엽고 장난꾸러기 였다.
우리는 서로 잘 놀았다.

편의점엘 같이 갔던 밤이 생각난다.
손바닥에 올려 놀 정도로 작았던 너를
내 머리에 올리고 편의점에 가면
넌 상품진열대로 내 머리를 타고 내려가
오징어나 건포 코너에서 니양니양 사달라고 울어댔다.
하지만 난 사주지 않았다.
내가 사먹던 핫도그속의 소시지를 주자
넌 뜨거운걸 먹느라고 혀를 날름거리며 식히곤 했다.
난 그런 니가 귀여워서 마구 웃으며 안아주곤 했다.

어느날 난 지독한 독감에 걸렸다.
작업실에서 혼자 살던 나는 몇일동안 일어나지도 못했다.
넌 배가 고파서 앓고 있는 나를 몇번이고 깨웠지만
난 혼수상태여서 일어나지 못했고
니가 내 얼굴을 발로 꾹꾹 누르며 밥달라고 울던 것이 생각난다.
아파서 제정신이 아니었던 나는 괴로워하며 다시 혼수상태로 빠졌다.

몇일만에 깨어났을 때 넌 보이지 않았다.
난 니가 집을 나간것이라고 생각했다.

몇일이 지난 뒤
널 나에게 준 친구가 작업실에 찾아왔다.
니가 없어진걸 이상하게 여기고
니 이름을 부르며 친구가 널 찾자
넌 내 침대밑에서 너무나 작고 미세한 울음소리를 냈다.
친구가 침대밑의 짐을 꺼내고 널 꺼냈을 때
넌 몇일이나 아무것도 먹지 못하여
보기에도 처참할 정도로 말라 있었고
그리고 –
그리고 몸이 이상했다.
친구가 부르자 친구에게 걸어가는 너는
뒷다리가 부러져 앞발로 한번 걸은 뒤 뒷다리를 질질 끌며 기어서 친구에게 갔다.
뒷다리가 부러진 것이었다.

그제서야 난 내가 아픈상태에서의 어떤 짓을 했는지 떠올랐다.
니가 밥을 달라고 보채는데
아파서 모든 것이 짜증난 나는
너를 한손에 집어든 뒤 벽쪽으로 내동댕이를 쳤던것이다.
너무나 작은 새끼고양이였던 너는
벽에 부딛쳐 다리가 부러졌던것이다.

뒷다리를 질질 끌며 걷는 너를 보는 순간
불쌍하고 죄책감이 들어서  눈물이 왈칵 쏟았다.
넌 안으려는 내손이 너에게 닿자
넌 몸을 부들부들 떨며 친구에게로 필사적으로 기어갔다.
뒷다리를 질질 끌며-

친구를 너를 데리고 병원에 갔다.
....

친구는 울면서 나에게 말했다.

고양이는 장난감이 아니다. 말은 못해도 이것도 생명이다.
너같은 것들은 동물을 키울 자격이 없다.

난 아무말도 못했다.
친구는 너를 데리고 가버렸다.

애완동물을 키우기 어려운 상황인데도
친구는 이미 불구가 되어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는 너를 키웠다.

그뒤 난 가끔 친구네 집에 가서야 널 만나곤 했다.
밝고 명랑하던 너는 성격마저도 음침해져서
사람을 따르지 않고 겁이 많아져 있었다.
넌 내가 가면
내 발자국소리만으로도 귀신같이 내가 온 걸 알고
어딘가에 숨어서 내가 갈때까지 나오지 않았다.
이틀이고 삼일이고 기다렸지만
너는  나오지 않았다. 밥도 먹지 않고 …

난 마음이 아팠다.
내가 가야 니가 밥먹으러 나온다는 것 때문에
난 예정보다 빨리 집으로 돌아오곤 했다.


친구가 불러서 겨우 나타나더라도
내가 한번 안아볼려고 하면
넌 부들부들 떨며 캬악캬악 경고음을 내며 발버둥을 치고 도망가 숨었다.
작은 짐승 한마리가 나를 그토록이나 경계하고 무서워한다는 것이
마음이 아팠다.

친구는 널 사람이상으로 귀여워해주고 아껴주었다.
외출을 해도 너 때문에 빨리 귀가를 했다.
밥을 먹을때도 니 밥을 챙겨준 뒤 같이 먹었고
친구와 너는 가족처럼 사랑하는 사이라는 것이 눈에 보였다.

넌 그 친구에게 맹목적인 믿음과 사랑을 가지고 있었다.
다른사람은 다 무서워 해도 친구만은 따랐다.
고양이가 아니라 마치 강아지 같았다.
다른 사람은 그 누구도 따르지 않으면서도
그 친구가 집에 올때면 발자국소리로 미리 알고
이미 문앞에 나와서 기다리고 있곤 한다고 했다.
몸을 부비고 왜 늦었냐는 식으로 투정하며 울면서
친구가 가는곳마다 종종걸음으로 따라다니곤 했다고 한다.
작은 생명하나가 자신을 기다리고 있다는 것이
친구는 좋다고 했다.

하지만 새끼 때 뼈를 다친 너는
몸이 자라지 못했다.
언제나 새끼 고양이때의 크기였다.
그런 너를 볼때마다 난 양심에 가책으로
다시는 짐승을 키우지 말아야지 했다.

얼마전에 널 본 것은 일주일전이다.
이미 너는
고양이 나이로 치자면 고령이었으나
뼈를 다쳐 여전히약간 이상한 걸음걸이의
새끼때와 똑 같은 작은 몸으로 -
나를 경계하며 제 주인을 따라 다녔다.

난 니가 날 여전히 무서워하는 것이 너무나 마음이 아팠다.


그런데 그날은 이상했다
한순간이긴 했지만
니가 나에게 와서 냄새를 맡고 친한척을 하고
내 품에 안겨서 가만히 있었다.
친구는 너도 이젠 늙었나보다고 놀렸고
난 기쁨을 숨길수 없어서 쑥스러웠다.


얘가 이젠 날 용서했나봐
라고 친구에게 말하며 아주 기뻐했다.
우리는 술을 마시며 북어국을 먹고 있었다.
너에게 북어살을 발라주면
넌 맛있다는듯이 얌얌 먹었다.

친구는
니가 크레미를 좋아한다고 말했다.
나도 크레미 좋아한다고 말하며
그럴줄 알았으면 크레미를 사올걸 – 이라고 생각했다.

난 너랑 다시 친해져서 무척이나 행복했다.
그날 다행히 디카를 가지고 가서 친구가 널 안고 있는 사진도 찍었다.
플래쉬가 터질때마다 넌 움찔 놀라고 했다.
그런 니가 귀여워서 우리는 핫하하하 웃었다.
행복한 밤이었다.
친구는 너와 같이 찍은 사진을 가지고 싶었는데
잘됐다고 말했다.

오늘 알바를 하는데 친구에게 전화가 왔다.
친구는 울음 때문에 이상해진 목소리로 말했다.

-성배가 죽었어








눈물이 나서 아무것도 할 수가 없다.

니가 그렇게 좋아한다는 -
봉지 띁는 소리만 들어도 주위를 뱅뱅돌며 애교을 떤다는
크레미를 한봉지라도 너에게 사줬다면
이렇게 눈물이 나지 않을 것이다.




성배야
니 다리 다치게 해서 정말 미안해
널 함부로 대해서 정말 미안해
하지만 나도 널 사랑했어
그리고
그날 마지막 날
나에게 와서 내품에 안겨줘서

한번이긴 했지만

…고마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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