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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박자만화공방_후일담

나도 내가 좋아

산울림의 노래 <내 마음에 주단을 깔고>
현재 시간 새벽 – 라디오 듣는 중- 이 노래가 나오고 있다.
이 노래를 처음 들었던  – 그 당시가 생생히 기억 난다.

대학로 마로니에 공원 뒤에 있던 예전의 작업실이다.
조명은 작업대 앞의 스텐드 – 작업대 위는 어수선
난 작업대 앞에서 동화 일러스트를 하고 있고
실내에는 놀러온 듯한 사람이 하나 있다. 남자다.
계절은 여름인가? 반팔옷을 입고 있다.
난 그 사람을 약간 좋아하나 보다.
꽤 의식을 하고 있으면서도 무표정을 가장하고 있다.
대화도 한다. 그저 그런 이야기다. 그리고는 어눌한 침묵
그때 이 노래가 라디오에서 나왔다.
전주가 길었다. 당시엔 외국 연주곡인가 했다.

붓에 물감을 찍어 그림 속 하늘에 구름을 그린다.
문득 사내를 훔쳐보고 - (…니가 좋아) ...생각들며 머리속이 울렁한다.
또 문득 (… 니가 참 좋아) ...하고 또 마음이 출렁한다.

라디오의 노래는 전주가 끝나고 가수의 목소리가 나왔다.
맺힌곳 없는 – 중얼거리는 듯한 가사

-내 마음에 주단을 깔고
-그대 길목에 서서
-예쁜 촛불로 그대를 맞으리
-향그러운 꽃길로 가면
-나는 나비가 되어
-그대 마음에 날아가 앉으리

-아.. 한마디 말이 노래가 되고 시가 되고
-내 마음에 주단을 깔고 그대를 위해 노래 부르리

-그대는 아는가 이 마음
-주단을 깔아 논 내 마음
-사뿐히 밟으며 와주오
-그대는 아는가 이 마음-

이 얼마나 유치뽕짝인 가사인가?
하지만 순진할 정도로 노골적인 이런 노래야말로 위험하다.
나도 모르게 생각이 말이 되어  튀어 나온다.

- 난 니가 좋아! (꽤 큰 목소리)

사내는 내 말에 책에서 얼굴을 들었다.
난 아무말도 안한 척 (빨개진 얼굴은 어떻할건데?)
숨을 죽이고 계속 그림을 그리는 척했다.
그는 뚱한 얼굴로
내숭까는 나를 관찰하더니
히죽 웃으며 이리 답했다

- 나도 내가 좋아 (히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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