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게 물고기 아닌가요?>
지난해에 같이 살던 여자와 헤어졌다.
여자들이란 왜 그런지 이쪽에서 먼저 결별선언을 하면
지나치게 피해의식을 갖는다는 걸 지난 경험으로 아는 그로서는
그녀 입에서 헤어지자는 말이 나오기를 꽤 오랫동안 기다렸다.
혼자 있을 땐 거울을 보며 그녀가 결별선언을 했을 때
기뻐서 웃지 않도록 표정연습을 하곤 했다.
다행히도 서로 기분상하지 않는 선에서
만족스러운(?) 얼굴로 그녀는 떠났다.
그녀가 떠난 뒤에야 깨달았다.
그들이 함께 기르던 물고기에 대하여 잊고 있었다는 것을 …
이제 와서 물고기 때문에 연락을 하는 것은 싫다.
혹여 그가 미련이 남아서라고 오해하면 정말 곤란한 것이다.
그걸 계기로 다시 엮인다는 가능성이 전혀 없는 것이 아니므로
그런 상황 자체는 피하고 싶다.
그러고 보니 그녀의 연락처도 받아두지 않았군.
그녀가 떠남과 동시에 그 역시 연락처가 바뀌었으므로
그녀 역시 그에게 연락할 방법이 없을 것이다.
물고기의 존재를 깨닫고 나서 처음으로 취한 그의 행동은
그것을 산 곳에 다시 돌려 주자는 것이었다.
그러나 다시 찾아간 그 가게는 없어진 후였다.
아는 사람들에게 맡아 줄 것을 부탁하니 모두 교묘하게 거절했다.
이 물고기를 살 때만 하더라도 어항이며 산소 탱크며 꽤 많은 돈을 지불했는데
지금에 와서는 공짜로라도 받아주겠다는 사람마저 없다니…
물고기를 공짜로 드리겠습니다.
라는 문구의 전단을 길거리 가로수에 붙이기도 하고
인터넷에 올리기도 했지만 반응은 시원찮다.
- 물고기를 공짜로 주신다면서요?
- 녜
- 그런데 말은 할 줄 아나요?
제가 혼자 사는 사람이라서 늘 텔레비전을 틀어놓고 사는데 그것도 질리잖아요?
그래서 말을 할 줄 아는 물고기라면 관심이 있는데 어때요?
-말은 못하는데요?
그러곤 전화가 끊겼다
장난전화인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다. 그런 식의 전화가 계속 됐다.
다들 왜 그렇게 말을 하는 물고기를 찾는지… 그런 게 있기나 한 건가? –
- 물고기를 공짜로 주신다면서요?
- 녜 ...참고로 말은 못합니다!
- 호호호 –전 말을 하는 물고기를 원하지는 않아요.
공짜로 말하는 물고기를 바라다니 요즘 사람들 참 개념 없군요.
전 말 못하는 물고기가 더 좋다고 생각해요
대신 악기 하나 정도는 다룰 줄 알았으면 좋겠는데 …
(갈수록 산이군. 다들 미친 거 아냐? 물고기에게 왜 그런걸 원하냔 말이다.)
-제 물고기는 말도 못하고 노래도 못하고 춤도 못춥니다.
악기연주는 더더욱 해 본적이 없을 겁니다.
그냥 어항 물속에서 헤엄쳐 다닐 뿐입니다. 물속에서 나오면 바로 죽습니다.
그게 물고기 아닌가요?
그는 너무 화가 나서 소리를 질렀다
- 왜 저에게 화를 내죠?…
...................................................
왜 눈물이 나오는지 알 수가 없다.
사람들이 왜 말하는 물고기만을 원하는지 알 수 없어서 화가 났지만
결국엔 내 물고기는 왜 말을 못할까 – 한심스러웠고 그것이 가슴 미어졌다.
- 이봐요 –
전화기는 아직 켜져 있었다.
수화기 저쪽에서 그녀가 동정심어린 목소리로 차분하게 말한다.
–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어요. 물고기에게 말을 가르쳐봐요
그는 울어서 이상해진 목소리로 대답했다.
- 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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