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삼박자만화공방_후일담

택배박스, 초록 물고기가 되다

삼박자만화공방의 만화가 소공입니다. 제게는 아주 특별한 물고기가 있습니다. 하지만 원래 이 친구는 택배박스였습니다. 2013년, 대형공간에서 삼박자 단독 전시회를 앞두고 100개 이상의 캔버스를 사기엔 돈이 부족했던 저는 폐박스를 활용한 종이 캔버스를 만들기 시작했고 종이 캔버스 만드는 체험도 진행했고 종이 캔버스를 만들어 판매도 했습니다. 

택배박스로 만든 종이 캔버스에 그린 그림이 전시에서 고가에 팔리는 걸 보고 깨달았습니다.

“버리면 쓰레기, 재활용하면 작품!”

만화 전시회를 위해 캐릭터 조형물이 필요했는데, 역시 제작비가 너무 비싸 직접 만들기로 했습니다. 택배박스를 펼쳐 물고기 모양을 오리고, 폐현수막을 덧대어 튼튼하게 만든 뒤 제 만화 캐릭터를 그려 넣었죠.



 

 

그게 바로 삼박자만화공방의 마스코트 초록물고기 “어부바” 탄생의 순간이었습니다. 이름이 왜 어부바인지 당시 사진을 보면 이해가 되실 거예요. 심심할 때면 이러고 놀았거든요.

 

 

 

어부바, 주차금지 의자가 되다

당시 1층에 있던 삼박자만화공방에는 고민거리가 하나 있었습니다.건물주의 주차 공간이 문제였습니다. 3층에 사는 건물주가 아무나 주차 못 하게 하려고 우리가 사용하는 1층 옆걸목에 못쓰는 의자를 갖다 놨는데… 이게 너무 흉물스러운 거예요. 동네 어르신들이 쉬려고 다가왔다가 앉을 수도 없는 의자임을 깨닫고 실망하는 모습도 종종 보였죠. 그러다 보니 사람들이 쓰레기를 버리기도 하고…

 

아침에 삼박자만화공방으로 출근하면 누군가 불법으로 버린 쓰레기를 처리하는 것이 첫 번째 일이었습니다. 

 

 

매일 아침 이러는 건 도저히 안 되겠다 싶었습니다.그래서 주차 금지용 의자 2개를 리뉴얼해서 하나는 어부바 물고기를 앉히고 다른 하나는 주차금지라는 글자를 다시 쓰고  이쁘게 꾸며줬습니다. ㅋㅋㅋ그랬더니?

 

 

 

 

쓰레기를 버리는 사람도 사라졌고, 물고기 의자와 주차금지 구역이 삼박자만화공방의  포토존으로 떠올랐습니다.

 



 

삼박자의 마스코트인 빨간 고양이와 초록 물고기- 제가 앉아있는 저 자리에 앉아서 사진을 찍으면 멀리 남산의 서울타워까지 사진에 담을 수 있었어요. 저 각도에서 사진을 찍어  SNS에 올리는 행인들 덕분에  삼박자만화공방 홍보에 크게 도움이 되었습니다. 2년 뒤 건물주가 바뀌는 바람에 이사를 가야 했지만 불행중 다행으로 맞은편 이층으로 이사! 

 

 

 

전시회가 있을때면 달려가서 (?) 이렇게 또 전시장 앞에서 사람들을 끌어모으는 역할을 해주었습니다. 

2층으로 공방이 이사 갔을 때는 행인들의 시선을 끌어보려고 어부바 입체버전 설치물을 추가로 만들었어요. 2층 창문 베란다에서 삼박자만화공방을 찾아오는 손님들에게 이정표가 되어줬습니다.

 

선생님, 저희도 해보면 안되요?

 

학생들은 커리큘럼에 들어있지 않은 이런 체험을 하는 것을 더 신기해하고 더 재미있어했어요.  자아 이제 너희들 그림 그리자~ 라고 붓을 뺏곤 했죠 

 

 

공방과 남산타워가 보이는 각도, 행인과 외국인 관광객들이 이 각도에서 찍어가면 흐뭇해하고 조금 각도를 달리해서 남산타워가 사진에 안 나오게 찍으면 직접 찍어주기도 했어요 ㅋㅋ

 

 

이렇게 쓰임새가 많다 보니 물고기는 두 마리, 세마리로 늘어났고 열쇠고리 상품도 만들어서 판매도 했습니다. 너무 많이 만들어서 아직도 팔고 있어요

 

 

https://sambakzashop.net/product/%EC%96%B4%EB%B6%80%EB%B0%94-%EC%97%B4%EC%87%A0%EA%B3%A0%EB%A6%AC/38/category/45/display/1/

 

어부바 열쇠고리

교환 및 반품 주소 - [04628] 서울특별시 중구 퇴계로26길 52 (예장동) 서울시소방재난본부 1층 웹툰파트너스교환 및 반품이 가능한 경우 - 상품을 공급 받으신 날로부터 7일이내 단, 가전제품의 경

sambakzashop.net

 

 

이사... 미니멀라이프… 그리고 철거  

그 뒤 삼박자만화공방은  또 이사를 갑니다. 더 좁은 곳으로 이사를 가면서 엄청난 양의 그림재료와 설치물들, 작업대들이 폐기되었지요.  미니멀라이프 책으로 스스로를  강제 가스라이팅하면서 꼭 필요한 것 외엔 다 팔거나 나누거나 버렸습니다. 가장 먼저 버려진 건 덩치 큰 캐릭터 설치물들이었습니다. 너무 커서 둘 곳이 없었거든요.

철거 중

 

 폐기물 처리반 전문가들은 반나절만에  모든것을 기술껏 때려부셨습니다. 

 

안녕...

 

 

 

어부바, 다시 나타나다?!

지난주, 삼박자의 아말록 감독이 톡을 보냈습니다.

“물고기 의자가 잡지에 실렸대!!!”

“엥?  걔 몇 년 전에 사라졌는데?”

. 

신명환 작가님이 KTX를 타고 가다가 본 잡지 지면을  찍어서 페북에 올린 사진

정말 어부바였습니다.보는 순간 코끝이 찡하고 눈이 뜨거워졌습니다. 사진은 유명 사진작가님이 거리의 의자들을 찍은 프로젝트 중 하나였고, 무려 7년 전에 찍은 사진이 이제야 세상에 공개된 것이었죠. 제 머릿속 추억 속에만 남아 있을 줄 알았던 그 물고기 의자를, 지인이  기억하고 있다는 거에 놀랐고 , 사진작가는 7년 동안 자신의 이미지 폴더에 간직하고 있었다는 것도 놀라웠습니다. 

“내 물고기 의자가 사진작가에게까지 영감을 주다니… 역시 어부바!”

 

최초의 초록 물고기, 아직 살아있나요?

그렇다면 최초의 어부바는 지금 어디에 있을까요?  공방을 접으며 모두 폐기한 설치물들과 함께 사라졌냐고요?

아닙니다. 최초의 오리지널 어부바- 업으면서 놀던 물고기는 차마 버릴 수가 없어, 현재 제 개인 작업실에서 함께 지내고 있습니다. 좁은 공간 탓에 평소에는 수납장에 접어 넣어 두었지만, 신명환 작가님 덕분에 오랜만에 꺼내 펼쳐 보았습니다. 접어뒀더니 얼굴에 주름이 생겼네요

 

"이 녀석, 여전히 멋진데?"

요즘 저는  개인작업실에서 준비하고 있는 작품이 있어요 - 완성까지 대략 2년 정도 계획하고 있지요 - 이 작품에 몰두하고 싶어서 오픈형 공방 운영을 잠시 접었던 거였어요. 작품이 완성되면 다시 공방을 재오픈할 계획이었습니다. 처음에는 완성까지 2년 정도 걸릴 거라 예상했지만, 혼자 지내다 보니 어느새 느슨해져서 이 생활도 좋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8년 동안 오픈형 공방을 하면서 매일 출근하는 것이 힘들었거든요. "굳이 다시 공방을 열지 않아도 괜찮지 않을까?" 하고요. 어차피 외부특강을 계속하고 있으니까 말이야 - 이런 식으로 요

그런데, 이 초록색 물고기를 보자 깨달아버렸습니다. 공방 문 앞에 어부바를 세워 두고 지나가는 행인들을 호객하며, 그림좋아하는 사람들과 함께 정오의 희망곡 라디오를 들으며 그림을 그리고 수다를 떨던 그 생활이 얼마나 저랑 잘 맞았는지를요 -

덕분에 공방 버젼으로 머릿속이 리셋되어 버렸네요  

“빨리 준비 중인 작품을 끝내자 , 공방을 다시 열어야겠어.”

"기다려, 어부바!  ^0^ ~

...............................................................

 

아래 링크는 KTX 매거진 온라인 버전 / 초록 물고기 의자 사진이 조그마하게 실린 글입니다. 내용이 좋습니다. 읽다 보면 소동호 디자이너의 사물을 보는 방식이 자신의 눈에도 장착되면서 당신이 사는 골목에 나와있는 소품들을 유심히 관찰하게 될 거예요 

https://ktxmagazine.kr/%eb%aa%a8%eb%a5%b4%eb%8a%94-%ec%9d%98%ec%9e%90%ea%b0%80-%eb%a7%90%ec%9d%84-%ea%b1%b4%eb%8b%a4/

 

모르는 의자가 말을 건다 – KTX매거진

 

ktxmagazine.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