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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박자만화공방_후일담

현직 여고생이 말하는 힘이 대등한 사람끼리의 일

 어제 경복궁 담벼락  동네 - 서촌- 에서 기억에 남을 만한 경험을 했다.

 

주변 친구들의 배려(!) 덕분에 별로 노력하지 않아도
이런 저런 노란리본 행사를 목격하거나 참여하게 되는데
이번 공연이 특이했던 것은 진행자 대부분이 현직 고등학생이었다는 점이다.

전해 들은 바로는 기부로 받은 긴 천이 몇미터 있는데
그 천에 메시지를 적거나 그림을 그려서
광화문에서 굶고 계신 분들에게 전하고 싶다는 것이었다.

(솔직히 천 값 얼마 안한다. 근데 그거 무료로 받았다며
의미있게 쓰고 싶다고 생각한 자체가 귀엽다 - 그래서  참여하겠다고 했다)

약속장소로 간 건 아침 8시 반쯤
올빼미 만화가가 움직이기엔 정말 이른 시간이었고
광화문 입구에서 불심검문까지 당해서 무척 짜증이 났었다.

어제  광화문에 가 본 사람들은 다 놀랐겠지만
최근 광화문 인구밀도의 반 이상이 경찰차와 경찰이다.
게다가 어제는 일요일이라

경복궁을 겨냥한 외국 관광객까지 와글와글
경찰인구가 너무 많으니 그거 기념사진에 담으려다
경찰과 다투고 있는 외국관광객들도 많았다.
오늘 하루 피곤하겠구나 싶었다.

 
하지만 예상외로  즐겁고 소박한 시간이 기다리고 있었다
 
소소한 공연이 치뤄질 해당 장소는
경북궁 돌담길 서촌의 흔하디 흔한 작은 기와집이었다.

내디딤 이라는 청소년 심리상담소였는데

행사 주최자는 이 상담소를 운영하는

의사선생님이라 해야 하나 - 심리상담사라라 해야하나

어쨌든 나랑 성격 잘 맞을거 같은 - 분이셨다


한옥 대문을 열고 들어가면 3평 남짓은 작은 마당
 

결론을 이야기 하자면 공연 내내  소소했다
얼마전 있었던 불행한 사건에 대한 토론이나
현 정권에 대한 비난 같은 이야기는 없었다.

그럼 뭘 했냐?
마당에서 노래를 부르고 먹거리를 준비해놓고
지나가는 사람들이 들어오면 같이 노래를 듣고 같이 먹고
같이 편지를 쓰고 같이 그림을 그렸다.

그게 다였다

 

 

삼박자와 몇 명의 만화가 - 그리고 현직 그림작가 몇 명

고등학생 중 수업중에 그림 좀 그린다는 아이들도 도와서 
방문객이 유가족에게 메시지를 전할 천벽화 밑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음악가들은 마당에서 기타를 치고 멜로디온을 불며 노래했고
가수의 아이는 엄마 옆에서 엄마 노래를 들었다.

 

 

 

 
모임 사이즈가 워낙 작아서 마치
한옥 게스트 하우스에서 음악하는 언니랑 오빠들이 노래연습하는 걸
동네 어른들이랑 아이들이 놀러와서 구경하는 모양새였다.

그 장소의 주인이며 행사를 진행하는 집 주인은
그 전날부터 아이들과 행사 준비를 한듯하다
주방엔 감자가 한 솥 삶아져서 먹기좋게 쟁반에 수북히 담겨 있었고
옥수수 - 손수 만든 쿠키(누군가 집에서 구워왔단다)

 - 손수 짠 과일쥬스 - 등이 준비되고 있었다.

봉사하는 아이들 대부분은 여고생 남고생이었는데
어른은 몇 명 안되었는데 대부분 집 주인의 친구로

그 들 대부분은 초등학생을 둔 엄마들이었고
아이들은 엄마를 도와서 방문객에게 편지지 등을 나눠줬다.

 

사람들은 편지를 쓸 때 방안으로 들어왔다

따로 탁자같은게 준비된게 아니라 그냥 방바닥에 엎드려 편지를 섰다

엄마와 아빠와 같이 들어온 어린이들이 많았다.

오후가 되자 집주인의 지인인듯한 사람들이 조금 더 왔다
다들 뭔가 먹거리를 그릇에 담아 왔다.

그들이 가져 온 음식은 바로 주방으로 가서
진행하는 여고생들에 의해
접시에 담겨 마당에 마련된 음식 테이블에 올라갔다.

작은 마당 가운데 있는 공연장은
아이들이 그린 그림으로 장식이 추가되었고
여고생들은 서로 순서를 정해서
마당에 사람들이 빠져 나가면 엽서사이즈 공연알림표를 들고 거리로 나가 
새로운 관람객을 보내줬다  

- 다들 뭔가 먹거리를 들고 오네요?
- 공연 준비하면서 돈 별로 많이 안들었겠어요?
라고 집주인에게 물어봤더니

- 그림 재능기부해줘서 고마워요
- 음악공연도 재능기부로 이루어지는거고
- 행사진행은 고등학생들이 대부분 자원봉사로 하는거고
- 음식은 주변 지인들이 손 수 만든 거
- 유일한 지출이 미술팀이 산 물감값이 유일해요
- 아 - 아쉬운데요 ? 우리도 물감 직접 가져올걸 ~

이런 대화가 오고 갔는데 그런점이 무척 신선했다. 
 

공연내내  - 여기는 뭐하는 곳이지?
뭐 이런 표정의 사람들이 들어왔다
마당에 마련된 먹거리를 접시에 담아와 먹으면서
그림을 그리고 편지도 쓰고 공연도 즐기다가 떠났다.
그들이 떠난 자리에 또 다른 사람들이 와서 그러고 갔다.

 

 

실내가 혐소해 마당으로 들어올수 있는 인원
방으로 들어올 수 있는 인원 다 합해봐야 50명 내외였는데
공연내내 꾸준히
그만큼이 들어왔다가 그만큼이 나가고 또 그만큼이 들어왔다.

여고생들은 일사분란하지는 않았지만
지들끼리 소곤소곤 귓속말하다가 까르르 웃으면서
마당의 먹거리가 비면  후다다가 주방으로 가서

먹거리를 담아서 마당으로 들고 나가고


때가 되면 거리로 나가 새로운 사람들을 데리고 들어왔다.


- 언니 - 나 아까 나가는데 경찰이 잡고
- 이런거 붙이면 안돼 - 이러더라구요
- 그래서 내가 마시던 음료수를 줬더니 ...

라든지


- 언니 난 지하철 입구에 가서
- 이곳 찾아오기 쉽게 발자국 붙이고  있는데
- 경찰이 와서
- 그리고 3번 출구를 막아놓고 ...

이런식으로 아이들은 한번 나갔다가 들어오면
마치 무용담을 들려주듯이 이런저런 이야기를 했다.
경찰과 어떤식으로 대응했는지 이야기 했고
그런때는 이런식으로 말하면 돼 - 라고 먼저 갔다온 아이가 말하며
지들끼리 속닥속닥하더니 또 까르르 웃곤 했다.

경찰과 서로 밀치거나 완력이 오가는 이야기도 있었는데
마치 일제시대에 일본경찰 눈을 피해
큰 길로 나가는 방법을 공유하는 독립군들 대화다

그 시절 독립군과 다른 점은
경찰들이 시민들의 손에서 정부를 보호하기 위해 힘쓰고 있다는 점과
이 여고생들은 그 옛날 독립군보다 잘 웃고 얼굴도 이쁘다는 것 정도 - 
이 여고생들은 어디서 툭 튀어나온걸까?
요즘 여고생들은 다 이런가? 아니면 이 아이들만 이런걸까
외모뿐만 아니라 정치적으로도 성숙하다

 

 

 

그래서 또 문득 든 생각

 

얼마전 송송화가 엄마랑 이모집에게 갔더니
이모가 송화 가방에 달린 노란 리본을 보고
쓸데없는 짓 하고 다니지 말라고 차갑게 잔소리를 하셨다고 했다.


- 우리 엄마는 평소엔 내가 하는 행동에 아무 말 안하고
- 오히려 응원해주는 편이었거든
- 근데 이모가 그런 말을 하니까 내 편을 들어주기는 커녕
- 딸이 애국자라 피곤하다 피곤해 어휴 -
(애국자라 할 때 비아냥거리는듯한 억양^^;)


- 그러니까 엄마가 더 얄미운거야
- 집에서는 동생이랑 오빠까지 다 나랑 생각이 같으니까
- 엄마는 우리가 이런말 저런 말 할 때 아무 말 안하다가
- 이모 만나니까 솔직하게 말하는 거 같더라구 

- 어떤 의미론 엄마가 불쌍하네 - 집에선 말도 못했단거잖아?

- 친구들이 그런 소리 가족에게 들었다고 할 때는 그런가부다 했는데
- 우리집 어르신들이 그런 소리를 하니까 완전 맥 빠져  - 답답해


그날 송화랑 나랑은 우리 부모님 세대의 어리석음에 대하여 말했었다.
하지만 오늘
부모님 세대의 어리석음에 대하여 말하는 우리세대에 대해
방에 있던  여고생들이  한마디 했다

 

난 벽을 바라보고 사진속의 그림을 그리고 있었고

저쪽편에 몇명의 중년층이 앉아서 손편지를 쓰고 있었고

몇명은 밖이 더운지 부채질 -

그리고 방안의 대부분은 10대들이 많았다

아이들은 광화문 풍경에 대해서 어른들과 비슷한 이야기를 시작했는데

- 속상하다 맘 아프다 - 왜 안변하지? 뭐 그런거 -

근데 대뜸 한 아이가

- 불의를 보고 참을 수 없다면서 정의를 논하는 것은
- 힘이 대등한 사람끼리의 일이야 - 

- 단식이나 삼천배 - 이런거 말고는 떠오르지 않나봐

 

- 맞아맞아 - 완전 한심 - 짱 답답해  

아이들이 속닥속닥 입을 삐쭉거리면서 동의한다

 

 

 

옆에서 듣고 있던 한 중년층이 돌아본다

그리곤 또 못들은 척 하는  중년 -

 

 

 

다들 예상 했겠지만

단식과 삼천배를 말하는  그 아이들의 시선이

경로당 어르신들을 바라보는 우리의 시선과 다르지 않다

우리가 어르신들이 한심한 것 이상으로 아이들은 우리가 한심한 것이다.

다행인것은 내가 그런 마이너스 시선들 때문에 속상하기보담  

다른 의미로 - 다른 각도로

그런 이야기를 하는 아이가 있다는게

개운한 기분이 들었다는 점이다. ( 만화가라서 그런가 ? ) 

 

 

애들아 또 보자 ~ 오늘 공연 - 느낌 정말 좋았어  -  ^O^ ~

이런 기회를 만들어 준 내디딤과 이승옥 선생님 

많이 와 준 현직 고딩들 ~  감사요

 

 

 

 

 

오늘은 여기까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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