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색창연한 교과서 시인 소월에 대하여 흥미를 갖게 된 것은
도서관에서 당시의 한글표기로 기록된 소월전집을 발견하고 난 뒤의 일.
당시의 한글표기는 위의 시 [맘 켱기는 날]처럼 정감어린 표현이 많다.
그는 1902년 조선왕조의 [대한제국]시절에 태어났고
개탄스런 시기에 10대시절을 보낸다.
다니던 학교의 교사 김억에게 시적 재능을 인정받아
시를 쓰기 시작했다.
살아 생전 유일한 시집인 [진달래 꽃]을 발표한다.
하수상하던 시절이라 시인은 가난했고
지독한 극도빈곤에 시달리던 소월은
34년 12월 24일 아편을 먹고 젊은 시체로 발견된다.
당시의 정서상, 불우하고 나약한 시인은 그렇게 잊혀졌다.
1977년 어느 날 - 우연히 소월의 시 노트가 발견되는 사건이 발생한다.
사후 43년만에의 일이었다.
낡은 노트에 있는 시들의 일부분이
스승 김억이 자신의 시로 발표한 것이어서 사람들을 놀라게 했었다
그런 이유로 1977년 이전에 소월의 시를 공부한 사람들은
소월이 스승 김억의 영향을 많이 받아 시풍이 비슷하다고 배워야만 했다.
재발견된 소월의 시들은 [진달래꽃]을 대표로 해서
교과서 시인으로 옷 매무새를 고치고
70,80시대의 대중시인으로 자리매김한다.
그를 교과서에 실은 사람들은 그의 시들이
나라를 잃은 민족의 애국심을 사랑으로 승화 한 것이라고 해석해줬고
같은 뉘앙스의 문제출시로 시를 읽은 청소년들의 접근방식을 제한했다.
물론 그의 죽음역시 자살이 아니라 병사라고 가르쳤다.
7080에게는 통했지만 그 뒤의 세대에게는 먹히지 않았다
윤동주처럼 감옥에서 죽었었다면 모양새가 좋았을텐데 - 하고 아쉬워 했을 것이다.
그의 시에서 좌절한 투사의 흔적을 찾으려는 공식화된 매도는
[우리나라 고유의 민족적 감수성을 가졌다]라는 말로 평가절하 되었다.
김소월
나라 잃은 민족의 애환에 대하여 노래했다는
모범답안 시 해설서는 새빨간 거짓말일 가능성이 농후하다.
그러기에 그의 시들은 너무나 달짝지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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