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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박자만화공방_후일담

올해는 가도 돼 - 고창 보리밭 축제 2022

 

 

얼마 전 구내식당에서 무덤덤하게 밥을 먹고 있는데 실내에 틀어져있는 TV에서

코로나 때문에 지난 몇 년 동안 하지 못했던 고창 보리밭 축제가 올해는 가능해졌다는 뉴스 기사를 봤었다

운도 좋지- 이걸 뉴스에서 보는구나- 얼마나 다시 가고 싶었는데... 

 

초창기 -2005년 - 고창 보리밭 축제에 우연히 가게 됐던 나는 

그 뒤로 가끔 그때 꿈을 꿀 정도로 또 가보고 싶었던 풍경이었고 -

코로나로 꽁꽁 묶여있던 여행욕망에 망설임 없이 고창 보리밭 축제를 다녀왔다.

2005년에 갔을때는 교통편이 안 좋아서 굉장히 오래 걸어서 도착했는데

이번엔 친구 오빠가 보리밭 축제가 있는 마을까지 차로 데려다줘서 정말 편하게 도착했다.  

차에서 내리니까 바로 보이는 게 다 보리밭 - 왼쪽을 봐도 이런 풍경이고 

 

 

오른쪽을 봐도 이런 풍경이고 

 

아래를 보면 이런 풍경이고 

 

위쪽을 봐도 이런 풍경이다. 

 

보리밭 사잇길로 이렇게 저렇게 걸어 다니다가 친구 오빠의 차를 타고 편하게 돌아왔다 

그토록 가고 싶어 했는데 정작 사진을 별로 안 찍어서 아쉬웠다 

왜 이렇게 아쉽지 - 감동이 가라앉지 않아서 2005년에 찍었던 사진을 찾아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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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창 보리밭 축제 / 2005년 버전 

 

2005년의 고창 보리밭 기념사진은 버스 안에서 시작되고 있었다 

가는 도중의 버스안이 흥미로웠나 보다 

서울 고속버스터미널에서 고창으로 버스를 타고 갔는데 3시간 정도 걸렸었다.

고창에서 또 시외버스를 타고 구불구불 가야 했다. 시골 장날이었다. 

한참을 기다려서야 버스가 왔는데 평균 연령이 높은 버스 안은 굉장히 붐볐다. 

여자가 20명이 넘는데 남자는 한 명인가 두 명밖에 없었다.  

할머니들은 모두 뭔가 짐을 지고 있었는데 무거운걸 거뜬하게 들었다. 

모자를 쓴 할배는 멋쟁이여서 잘 다림질된 옷, 모자 깨끗한 구두 

꽤 큰 가방을 들고있는 할머니가  이 할배의 동행이라는 걸 아직도 기억한다. 

 

 

버스에서 내려서 또 1시간 이상 걸었었지. 원래 그런 건지 길을 잃은 것인지 알 수 없었다. 

 

햇빛이 강해서 더웠다. 가도 가도 시골 밭만 이어진다. 

밀짚모자를 미리 산 것이 신의 한 수였다 

학교 다닐 때 우리는 늘그런 이야기를 했었다. 나중에 같이 여행 가자고

둘이 밀짚모자를 쓰고 시골길을 하루 종일 걷자고 

우리는 소원대로 그렇게 하고 있었는데 그때는 생각만큼 즐겁지는 않았다. 

 

이때 산 밀집모자를 그 뒤 여행 때마다 같이 쓰고 다니곤 했다. 

 

 

초행길이었고 주변엔 온통 밭뿐이었다. 생수가 점점 줄어들었고 

근데 지금 이때를 생각하면 무척 즐겁다 

가도 가도 시골 밭이 언덕에서 언덕으로 이어져 있었고

5월의 시골 밭은 예술작품처럼 아름다웠다.  고창의 시골 흙은 굉장히 붉다

 

 

1시간 정도 헤맨 끝에 저 멀리 초록 물결이 보였다

 

저긴가? 저긴가? 하다가  - 드디어 도착 -했다.  

바람이 많이 불었는데 - 보리밭 지평선이 바람에 이렇게 눕고 저렇게 누우면서 출렁거렸다

보이는 게 다 보리밭 - 여기도 저기도 이쪽 지평선도 저쪽 지평선도 -  다 보리밭 

 

가까이 다가가서 자세히 보고  

 

 

만져보고 

 

 

보들보들 까슬까슬 

 

2005년의 보리밭 축제는 요즘보다 사람이 별로 없었다. 그래서 좋았다. 

 

요즘엔 보리밭 경계에 철 말뚝을 박고 끈으로 들어가지 못하도록 해두었는데  

방문자가 많아져서 어쩔 수 없었을 거라고 짐작된다.  

2005년엔 아직 방문자들에 의한 보리밭 피해가 많지 않았을 때여서 경계가 별로 없었고 

그때도 사잇길이  아닌 길로 들어가면 안 된다고 안내받았지만 

사진을 찍을 수 있도록 보리밭 여기저기에  사잇길을 많이 만들어두었던 것도  좋았다 

 

 

 

 

다리가 너무 아파서 잠시 쉬기로 하고 사람들이 별로 없는 보리밭 가장자리로 가서 앉았다  

 

 

 

잠시 누워서 잠자는 시늉을 하면서 설정샷을 찍었는데

정말  피곤했는지  - 정말 잠이 들었었다. 

처음엔 친구도 내 옆에 같이 누워있었던 것이 기억난다. 

 

 

이때의 사진이 이 여행을 영원히 잊을 수 없는 것으로 만들었다.  볼 때마다 다 기억에 난다.

누워있는 등판 아래의 짚풀들에서 느껴지는 약간의 쿠션감 - 등 쪽 아래의 돌멩이 한 개 

조금 뜨거운 흙의 냄새 - 뜨거운 몸이 식어가며 느껴지던 으슬으슬함 -

누워있는 머리 위에서 보리밭이 쏴아아 쏴아아 흔들리는 소리

10분 정도 잤나 - 아니면 더 잤나 모르겠지만 머리통 비비면서 꿀잠을 잤다 

꿈도 꿨다. 맛있는 거 먹는 꿈 - 배가 무지 고팠다 

일어나서 찍은 사진 보면 머리가 다 헝클어져 있다 

여기 앉아서 멍 때리고 또 한참 있었는데 - 집으로 돌아가려면 걸어온 만큼

또 시골길을 걸어가야 해서 한숨이 나왔었다. 

다리가 아파서 보니 하도 많이 걸어서 발바닥에 물집이 생겨 있었다. 

 

 

배가 고파서 죽을 지경이었다. 배가 등가죽에 붙었는데도 주변에 먹을 데가 없어서 울고 싶은 기분이었다. 

2022년 지금은- 이 주변에 이제 카페도 있고 편의점도 생겼더라. 식당도 있다 

카페가 무지 이쁘게 꾸며져 있고  사람이 어찌나 많은지 번호표를 받고 한참을 기다려야 했다.

 

 

집으로 돌아가기 전 기념사진을 찍고 있는 나에게 가서 말해주고 싶다. 

 

너는 이 날 이 순간을 그 뒤로 내내 그리워하게 된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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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로부터 17년 뒤 / 현재 2022년 5월  

 

사진 찍기 싫어하는 친구 덕에 보리밭 풍경을 눈으로만 담고 사진은 거의 찍지 않았다

지나고 보니 장단점이 있다. 사진 안 찍고 눈에 담으니까 더 생생하게 또렷하게 기억해서 좋았는데 

며칠 지나니까  기억이 점점 사라진다. 사진이 없으니까 꺼내볼 수가 없다. 추억하기가 힘들다 

 

이번에 보리밭 축제에 갔을 때 친구가 찍어준 유일한 사진

밀짚모자를 안 가지고 가서 더웠다. 해가 뜨거웠다. 그림자 짙은 거 봐라 

 

2022년 사진과 2005년 사진을 비교해보면서 문득 깨달았다

친구와 함께 시골길을 걸었던 2005년의 그 여행이 좋았고 그리웠던 거였구나 

 

아까 낮에는  밀짚모자  생각나서  찾아봤더니 작업대 선반 아래에 있다. 

추억이 깃든 밀짚모자 꺼내서 시계 아래 걸어놨다가 

작업실이 너무 낭만적으로 보여 다시 작업대 선반 아래에 숨겨놨다. 

조만간 저걸 쓰고 어딘가 가자... 하루 종일 시골길을 걷자... 생각하지만

터미널 가는 지하철에서 밀짚모자 들고 있으면 부끄럽다.

그래도 다음 여행엔 가방에 쑤셔 넣어서라도 가져가야지 

 

이번엔 가방 속에 먹을걸 좀 챙겨서 가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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